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악숨 왕국 (문단 편집) == 역사 == [[서아시아]]에 살던 [[셈족]] 계열 민족이 기원전 550년 경에 [[에티오피아 고원]] 일대에 도착해서 국가의 기반을 닦기 시작하여 [[기원전 2세기]]에 건국되었고, [[1세기|기원후 1세기]]가 되어서는 제국으로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국가 자체는 기원후 10세기 경까지 존속했는데 악숨 왕국은 [[로마 제국]]과 [[이집트]], [[인도]] 등의 주변국들을 상대로 [[상아]], [[금]], [[거북]] 등껍질, [[향신료]], [[노예]], [[흑요석]] 등을 팔면서 짭짤한 이익을 취했고 이 무역으로 발생한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강성한 해군력으로 중무장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군사력을 중무장한 이후인 3세기 경부터는 정복 사업으로 영토를 확장하기까지 했다. 또한 4세기에는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악숨 왕국은 한때 [[마니교]]의 창시자 [[마니(종교인)|마니]][* 생몰년: 216년~274년]가 [[사산 왕조|이란]]·[[로마 제국|로마]]·[[중화제국|중국]][* 마니가 살던 시절 중국은 [[위진남북조시대|분열기]]였다.]과 함께 4대 강국이라 했을 정도로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다만 악숨 왕국의 실제 국력은 영토·인구·군사력·기술 등을 따졌을 때 저들에 비해 한참 부족했다. 오히려 저 4대 강국에 포함되어있지도 않은 인도의 [[쿠샨 왕조]]가 영토와 국력이 훨씬 더 강력했다. 악숨 왕국은 로마의 영향력 아래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군사 지원도 받았으며, 당시 페르시아에서 인도·중국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홍해]][* [[19세기]]에 [[영국]]이 [[수에즈 운하]]를 뚫은 것도 이 [[홍해]] 루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으며, 현대 [[미국]]도 홍해를 중요하게 여기고, [[중국]] 역시 이 곳을 핵심 이권이 달린 지역으로 여겨 최초의 해외 군사기지를 이 지역에 위치한 지부티에 건설하였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와 인도·중국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했던 페르시아에 사는 마니가 악숨 왕국을 과대평가했을 수도 있다.[* 애초에 마니는 3세기 페르시아에 살던 인물이기에 그가 내린 평가가 무작정 정확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악숨 왕국은 당대 홍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로마]]와 이해관계가 맞아 동맹을 형성하면서 국력이 신장되었다.[* 사실 고전 시대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왕조는 이 악숨 왕국보다는 나일강 상류에 위치해 있던 [[쿠시 왕국]]으로, 현대의 [[수단 공화국]]의 전신 격이 되는 곳이다. 다만 마니가 살던 기원후 3세기의 경우는 실제로 쿠시 왕국이 이 악숨 왕국과의 무력 충돌에서 연거푸 지면서 국력이 상당히 쇠락한 상태였던 것은 사실이다.] 5세기경엔 당시 [[예멘]]을 지배하고 있던 [[힘야르 왕국]]을 공격, [[마리브 댐]]의 붕괴로 국력이 크게 약화된 힘야르 왕국을 멸망시키고 아라비아 전부를 지배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로마]]의 홍해지역 함대의 도움을 받았다. 당시 힘야르 왕국은 [[사산 왕조|페르시아]] 쪽으로 기울어 있었기 때문에 해당 전쟁은 서로대립하던 [[동로마|로마]]와 [[사산 왕조|페르시아]] 두 제국이 [[홍해]]의 패권을 두고 치른 일종의 대리전에 가까웠다. 그러나 악숨 왕국의 지배는 오래가지 않았고, 결국 아라비아 중부의 부족들에 의해 쫓겨났다. 참고로 아라비아 부족이 악숨군을 물리친 그 해가 바로 '코끼리의 해', 즉 [[무함마드]]가 태어난 해다. [[파일:1차 히즈라 에티오피아.jpg]] [[무슬림]] 피난민을 접견하는 네구스 왕 한편 614년에는 [[메카]]의 초기 무슬림 ([[무하지룬]]) 공동체의 일부가 [[우스만]] 등의 주도로 악숨 왕국으로 망명하였다. 당시 군주 네구스 (앗 나자쉬)는 주변의 만류에도 쿠란의 마리아와 예수 부분을 낭송하는 무슬림들에게 동정심을 느껴 그들을 받아주었고, 628년 대부분이 귀환했지만 일부는 남아 정착하였다. 14년에 걸친 초기 무슬림들의 정주 동안 [[메켈레]] 북쪽에는 앗 네자쉬 모스크가 세워졌고, 이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로 여겨진다. 중세 들어 이슬람 국가들이 번성하면서 무역로가 끊기는 바람에 악숨 왕국은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7세기 이후에는 그 명맥만 유지하다가 결국 960년경에 악숨 왕국에 원한을 가진 시미엔 왕국 출신의 여왕 [[구디트]]에 의해 수도 악숨이 함락된 후 멸망했다. 이후 1137년에 악숨의 마지막 왕의 사위이자 봉신이었던 마라 타클라 하이마노트와 아가우족이 구디트의 왕조를 무너뜨리고 자그웨 왕조를 개국하면서 악숨의 계승국이 등장하긴 한다. 상술했듯이, 그들은 기독교를 믿어서 수도원을 굉장히 많이 지었는데, 에티오피아 북부의 타나 호수 안의 섬들에도 수많은 수도원들이 위치하고 있다. 악숨은 전성기에 돌을 깎아서 동굴 교회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랄리벨라 암굴교회|랄리벨라 동굴 교회]]이다. 그리고, 지금의 도시 악숨에 있는 교회 지하에 [[성궤]]가 위치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당대의 교회 건물이 많이 남아 있지를 않는데 유대교를 신봉한 여왕 구디트가 악숨을 정복하면서 수많은 교회들을 무너뜨리고 불태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레이주 한 지역에서 고대 도시 유적이 발견되었다. 발굴된 유물에는 기원전 8세기의 악숨 왕국이 성립하기 전의 것도 있어 도시는 악숨 왕국 시기를 포함해 대략 1400년간 번성한 것으로 보인다.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1211601009§ion=science&type=&page=|#]]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